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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커피

맏며느리 2024. 1. 17. 17:59

목말라 있던 대지 가득 앙상한 가지 아래 외로이 버티고 서 있는 고목들을 촉촉이 적셔 줄 빗방울들이 간간이 떨어 집니다

LCT 고층 건물 꼭대기에 걸려 있는 구름들도 피곤한 몸 잠시 쉬어가려는 지 미동도 없는 것이 겨울비는 욕심도 씻어주고 조급한 마음도 떨쳐내게 하나 봅니다



이런 날이면 왜? 달달한 믹스커피 한 잔이 간절할까요?

세계가 감탄했다는 커피, 프림, 설탕의 황금 비율에 종이컵 3분의 2가 못 미치는 물 양과 뜨거운 온도가 만들어 주는 그 맛이 이렇게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이면 컵에서 올라오는 김의 시각까지 더해 한 모금 입으로 넣으면 달달함으로 채워져 맛있습니다

어릴 적, 부엌의 식탁 위에는 커피, 프림, 설탕 통이 항상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으레 엄마 아빠는 커피 2스푼, 프림 2스푼,
설탕 3스푼의 비율로 타 드시면서 너무나 맛있게 마시던 커피맛이 궁금해 엄마 아빠 몰래 타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왜? 몰래 타 먹었냐고요?"

커피 마시면 머리 나빠져 공부를 못 한다는 게 타서 마시다 들키면 혼내시면서 하시는 엄마의 잔소리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윽한 커피 향과 부드러운 프림 그리고 달콤한 설탕이 혼합된 커피맛에 빠져
절대 마시지 못하게 하는 엄마의 호통에도 몰래몰래 타 마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시집을 갔더니 긴 머리카락을 돌돌 말아 쪽을 진 시할머니(남편의 할머니)께서 식사를 하고 난 뒤 타 드리는 믹스커피를 그렇게 좋아하셨습니다

그런데 커피 잔도 당신이 드시고 난 밥그릇에 타서 밥숟가락에 떠 드시는 걸 고집하셨습니다

그 모습이 아이가 숟가락질하는 모습 같아 귀여웠습니다

"손부야, 나는 이걸 이렇게 먹어야 소화가 되는 것 같다"
깨끗이 비우신 밥그릇에 탄 믹스커피에 기분 좋아진 시할머니께서는 바지춤 쌈지에 꼬깃꼬깃 넣어두었던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저의 용돈이라며 주셨습니다
그때 제나이 30을 넘었는데도
할머니께서 주신 만원 한 장도 그렇게 기분을 좋게 만들었습니다

믹스커피 한잔에도 누군가에게는 지난 이야깃거리가 녹아 추억을 마시게 합니다

우리 삶의 이야깃거리 많이 만들어 좋은 추억이라는 찻잔에 나눠 마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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