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들어보실래요?
제1편:집 장만을 위한 seed money
마련하기
한 남자와 결혼을 약속했다
결혼 약속은 준비해야 할 게 너무 많았다
제일 먼저 함께 살아가야 할 집이 있어야 했다
그러려면 돈이 필요했고 그 돈에 맞춰 함께 살아갈 집을 구해야 했다
남편이 될 남자는 대학을 졸업하고 중소기업에 입사한 지 3년이 조금 넘은 시기였기에 모아 둔 돈이 500만 원도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경남 하동의 시골 출신이라 부산이라는 도시에서 자취 생활을 했고 중소기업이라 월급도 그 당시 대기업에 취업한 대학동기들과도 월급차이가 많이 났다
그래서 양가에 손을 벌려 3000만 원의 전세 자금을 마련했다
그 돈으로는 24평 아파트 전세를 구하려니 힘이 들었다
그래서 부산 외곽인 반송 쪽에 그 금액으로 24평 아파트를 구했다
다행히 남편의 직장과 신혼집과의 거리는 멀지도 않았고 차가 없는 뚜벅이였는데
그 당시에는 다행히 회사 통근 버스를 이용해 출퇴근을 할 수 있어 차(車) 값에 들어가는 돈도 모을 수 있었다
1996년 2월 25일 결혼식을 올렸고
나의 결혼 생활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난 목표를 세웠다
잘 살기 위해 열심히 살아갈 거라는 목표!
그리고 그 목표 안에는 내 집 마련의 꿈도 있었다
어릴 적, 난 항상 새집에서만 살았다
아버지가 소방공무원이셨기에
아버지 월급으로 6 식구가 살아가기는 버거웠기에 엄마 아빠는 땅을 사서 집을 지어
그 집을 팔아 수익을 남기는
나름 집장사를 하셨다
그래서 어릴 적 우리 4남매는
늘 새집에서만 살았기에 난 어른이 되면 깨끗하고 근사한 나의 집이 저절로 생긴다고 만 생각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니 삶의 주체가 엄마 아빠가 아닌 나로 바뀌어 있었다
그래서 맨 먼저 통장을 만들었다
결혼 전 엄마가 나에게 주신 통장이 있었다
시집가면 주려고 모았다며 내가 어릴 적부터 모으셨다며 내놓으신 3개의 통장에는 각각 천 단위의 돈이 들어 있었다
그 통장의 돈을 모아 한 통장에 옮겼고 그 당시 이자가 20%가 넘었기에 이자만 해도 600만 원이 넘는 이자가 붙었었다
그리고 사이판으로 신혼여행 간 그다음 날 새벽 1시에 사이판 공항에 도착해 호텔에서 짐을 풀고 결혼식 폐백값으로 받은 돈을
정리했더니 50만 원이 되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푼돈으로 목돈 만들기 입출금 자유통장을 만들고 폐백값 50만 원은 첫 입금액이 되었다
결혼과 함께 경단녀가 된 난 결혼하고 3개월 뒤부터 'OOO영어교실'이라는 학습지선생으로 직장을 구해 맞벌이를 하며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결혼생활과 함께 전셋집을 탈출해 내 집 마련을 위한 나의 노력은 시작되었다
제 2편;com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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