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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탄(風樹之歎)

맏며느리 2024. 4. 15. 22:30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도 않아 보이는 사람이 감나무 모종은 뭐 하러 사가려고요?"

허리도 굽고 많이 노쇠해 보이는 그리고 나이도 여든은 훌쩍 넘어 보이는 할머니께서 모종 파는 가게 앞에서 감나무 모종을 사려고 하자 가게 주인이 물어봅니다

"감나무가 자라 감이 열릴 때까지 못 살면 우리 자식들이 먹거나 손주들이 먹겠지"

그 이야기를 들은 모종가게 주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나무 모종 3그루를 할머니가 밀고 온 할머니용 유모차에 담아 드립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나고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 세상과 이별하니  그래서 우린 주어진 삶을 운명으로 여기고   살아가나 봅니다

80 평생을 시골에 삶의 터전을 마련해 살아온 우리네 부모님들이 계십니다

"꼬끼오"하고 새벽 수탉이 울기도 전 시골 부뚜막 아궁이에 불 지펴 연기 피어오르면 시골 아낙네들의 하루가 시작되고 "음~~ 메"하고 간 밤 잠에서 깨어난 소들의 기지개 소리에 경운기 시동 건 농부들의 손놀림은 바빠지고  논가마다 들리는 농부들의 발자국 소리에 벼들은 고개 들어 반깁니다

봄이 오면 씨 뿌리고  한 여름 태양아래 땀 흘려 가꿔 온 곡식들을 가을이면 수확해 시장에 내다 팔아 그 돈으로 자식들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며 한평생을 호미와 가래질로 손 마디마디 굳은살 배긴 줄도 모르고 살아오시다 세월 앞에 허리는 휘고
다리엔 힘이 풀리고 거동(擧動)은 불편해도 들녘에 앉아
오늘도 호미질 괭이질에 세월이 만들어 놓은 고통도 잊습니다

지난봄 밭에 뿌려 놓은 취나물씨가 자라  싹을 틔우더니 잎이 넓어지며 밭을 초록으로 물들었습니다

세상과 이별할 것을 알지 못했던 밭주인은 땅을 고르고 씨를 뿌리고 잡초를 뽑으며 정성을 다 해 밭을 가꾸었습니다

취나물 향 가득한 나물로 무쳐 자식들 입으로 들어가는 걸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던 밭주인은 이 세상과 영원한 이별을 했지만
부모님이 뿌리고 간 씨에서 파릇파릇 자라난 초록의 잎들을 캐며
살아계실 때 더 잘해드리지 못 한 후회와 돌아가셔서도 자식 위한 희생에 고마움으로 눈가에 고이는 눈물은 땀방울 되어 흘러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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