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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빼 바지

맏며느리 2024. 1. 3. 16:52


1년 중 유독 5월이면 많은 행사들로 인해 몸과 마음뿐 아니라 주머니 사정도 여의치 않습니다

석가탄신일과 어버이날이 겹쳤던
5월의 휴일 시댁을 방문했습니다

"얘야, 이거 너 입어라~~" 여든한 살의 시어머니가 내미시는 손에 들려 있는 붉은 꽃가라 몸빼 바지를 보며 당황한 미소를 숨기며 " 어머니 이게 뭐예요?"라며 묻자 " 니 형님(시누)이 나 입어라고 사 줬는데 하도 이뻐 니 줄라고 안 입고 놔뒀었다 함 입어봐라"
"아~~~~~~~예"
라며  선뜩 입고 싶지는 않았지만 마지못해 갈아입고 나왔습니다

140cm 정도의 키에  38kg 몸무게를 지닌 어머님에 맞춰 산 바지여서인지
덩치가 2배? 는 더 큰 제가  입었더니  엉덩이 부분은 아주 살짝?, 끼이고 길이는 짧아 장딴지가 보일락 말락 해 바지를 밑으로 내리면서 " 어머니 어때요?"라며 묻자 "아이고 이삐네 네한테 딱 맞네(어딜 봐서 맞다고 그러시는지 ㅋ)" 라며 아주 흡족해하십니다

싫은 내색은 못 하겠고 마음에
드는 척 주신 선물에 대한 보답으로 꽃가라 몸빼 바지를 입고 어머니 앞에서 눈에 띄게 시댁 주방과 거실을 왔다 갔다 했습니다

결혼 한 그해 첫 추석명절이었습니다

시어머니는 큰며느리를 본 기쁨에
하동 시골장에서
3장에 5천 원 주고 샀다며 팔간색. 노란색. 파란색에 꽃무늬가 크게 그려진 팬티를 추석  선물이라며
제 앞에 내밀어 놓으셨습니다

그때 제 나이 27세, 도시에서만 태어나 자라 온
저에게 시골은 많이 낯설고 어색했습니다
그런데 시어머니께서 선물이라고 내민  너무 강렬했던 꽃무늬 팬티는 절 더 낯설게 만들었습니다

마지못해 "고맙습니다"라며  인사는 드렸지만
사이즈 핑계를 대며 입지는 않았습니다
(그때는 누가 봐도  90사이즈였거만 어머님 눈에는 제 엉덩이가 무지 커 보였는지 100을 사 오셨더군요ㅠㅠ)

그때는 시어머니께서 무슨 마음으로 그걸 사셨을까? 하는 마음보다 제 기분이 더 중요했나 봅니다
' 아니  어머니는 이걸 어떻게 입으라고 사 오신 거야  아이 참~~'
이라며 못 마땅한 마음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26년이라는  결혼을 통해  겪은 시골생활과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고 그리고 세월이 흘러 저도 50을 훌쩍 넘긴 나이가 되고 보니 부모의 마음을   조금 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나름 당신 기준에서 저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어 그러신 건데  어린 며느리였던 제가 받아들이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데 어머니는 또 그러십니다
" 바지가 세상 너한테 잘 어울린다"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가 주신 꽃무늬 몸빼바지를 세탁기에 돌리며
'다음에 시댁 갈 때도 가져가 입어야  되겠다'라며
야무지게 털어 건조대에 걸어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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