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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마지막 가을 걷이

맏며느리 2024. 1. 3. 20:45


"밭에 무시(무)가 알맞게 자랐을 건데 갖다 먹어라"

휠체어에 몸을 기대고 팔에는 주삿바늘을 꽂고는
안타까운 모습으로 당신을 바라다
보는 자식들을 향해
19살에 시집와 여든두 살이 되도록 지리산 밑 척박한 땅에 논과 밭을 일구며 몇 주전  쓰러질 때까지 일하셨던 시어머니는 여름에 파종해 두었던 무와 배추가 혹여 상할까 봐 염려가 되어 자식들에게 당부를 한다
  
봄이 오기 전이면 당신의 놀이터이자 삶의 터전인  텃밭에다 돈이 될 만한 씨를 뿌리기 위해 땅에 거름을 주고 밭을 다져 놓고는

봄이 되면 씨앗을 뿌려 여름이면 부추, 가지, 고추를 따고 감자, 양파를 캐 자식들과 주변사람들과 나누고 겨울 김장을 대비해  배추, 무, 파를 심어 둔다

여름에 파종한 배추는 시퍼런 잎들이 노란 잎들을 감싸며 먹으직스러운 모습으로 자라 있고 머리카락을 풀어 해진 것처럼 땅 위로 쏟아 난 푸른 무청들은
동치미 김치를 위한 희생을 감내하리라며 매끈한 모습으로 자라고 있다

아직 가을걷이도 하지 않은 텃밭에는 주인의 발걸음이 끊겨 버렸고 주인이 쓰다 던져 놓은 호미랑 칼 그리고 물 뿌리개만 나뒹굴고 있다

19살 어린 새색시에게 가난하고 힘든 시집생활은 악착같이 살아야  자식 4명 공부시키며 살아갈 수 있었기에
평생을 땅을 파고 씨를 뿌리며 일을 해야 했다

삶이 가져다준 세월은 이제 손 마디마디 상처와 흔적으로 남아  뼈에 가죽만 붙어 있는 모습으로  자식들 가슴을 아프게 하고 눈물짓게 하지만 아직도 삶의 터전에 흘렸던 땀방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 한 체 텃밭에 있는 작물(作物)들 걱정이다

어쩌면 시어머니의 마지막 가을걷이가 될지도 모를 무를 몇 뿌리 뽑아 와  물김치를 담았다

자식 위해 파종했던 무는 크고 튼실하게 자라 시원하고 맛있는 국물김치로 변신했다

아낌없이 내어주는 자연처럼 자식에게
늘 내어주었던 품의 온기가 이제는
서서히 식어가는 부모님의 모습을
지켜만 봐야 하는 자식들은 떨어지는 낙엽에도 가슴이 덜컹 내려앉을 것
같지만 마지막 남은 잎새에도 희망을 얘기하기에 생(生)의  마지막 끈이라도
꼭 붙들고 계시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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