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그때는 이 맛을 알 지 못했다

맏며느리 2025. 12. 21. 09:21


"엄마, 국에 머리카락이~~"
국그릇에서 흰색과 검은색이 반반인 머리카락을 집어 올리며 큰딸아이가 인상을 씁니다

"괜찮아, 발견했으니 다행이네"
라며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자

"엄마, 음식 만들 때 신경 좀 써 요즘 자주 이런 일이 있더라"

"우리 나이 되어 봐라 잘 안 보여"
라며 나이 탓을 합니다

그러고 보니 딸아이가 저한테 한 말을 어릴 적
저도 엄마께 했던 것 같습니다

"아야야야~~"

"맛도 없는 팥죽은 뭐 한다고 그리 많이 끓여, 힘들어하면서"

큰 솥에 팥죽을 한솥 끓이고는 한 그릇 떠 식탁에 앉으면서 엄마는 힘들었다는 소리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사람들과 나누어 먹고자  팥죽을 한 솥 끓여 딸아이에게 먹으라고 하자

"맛도 없는 팥죽을 뭐 하려고 이렇게 많이 끓여"라며 그릇을 밀치며 안 먹는다고 합니다

방금 끓인 팥죽을 한 숟가락 입에
넣으면서
''맛있네 나도 너  나 이땐 이게 맛난 줄 몰랐지, 지금의 나이가 되고 보니 맛있는 걸 알겠구먼"이라며 금세 한 그릇 뚝딱 비웠습니다

오늘이 1년 중 밤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동지(冬至)입니다

지금의 우리 세대는 집에서 팥죽 끓일 생각을 못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변 반찬가게에서 포장해 둔 팥죽이나 전문 죽 집에서 파는 팥죽을 사 올 생각은 하지만 말입니다

어릴 적 엄마가 그랬듯이 큰 솥에 팥을 삶고 체에 걸러 팥물을 만들고 엄마가 방앗간에서 빻아서 주신 찹쌀가루로 익반죽 해 새알을 빚고 불려둔 찹쌀을 넣어 한 냄비 끓였습니다

소금으로 간을 해가며 '맛있어져라'며 속으로
주문을 외며 만들어 한 국자 떠 식탁에 앉아
맛을 보는데
"맛있네"라며 제 스스로에게 감탄하며 그릇마다 한 그릇씩 담아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었더니
"세상에 이 번거로운 걸 어떻게 할 생각을 했어, 너무 맛있다"라는 칭찬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음식을 나누어 "맛있다"라는 소리를 들으면
다음에 또 무슨 음식을 해 나눌까?라는 생각부터
하는 것 보면 아무래도 병이 생긴 것 같습니다

팥죽 한 숟가락에 얼마 전 담은 동치미 국물 곁들여 오늘 같이 춥고  긴긴 겨울밤을 견뎌 봐야겠습니다



#동지 #팥죽 #한솥 #새알 #새알심 #긴 밤
#이웃 #동치미 #방앗간 #찹쌀 #찹쌀가루
#음식 #익반죽 #나이 #긴 겨울밤